2011. 4. 1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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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라는 단어에 제일 처음 생각난 한 장면.
중학교 때 짝꿍이 어제 뉴스에서 글쓴이가 고정간첩인 걸 봤다며
교과서를 북북 찢어대고 있었음.
무슨 더러운 벌레를 본 듯 그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학기가 거의 끝날 때였으니 그랬겠지만..
그 종이를 다 없앤 후 손을 털고 있었음.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글 내용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라는
국어 교과서에 자주 실리는 논설문인가 수필인가 그런 글.

그 때도 난 여전히 맹한 상태였고 
그게 무슨 큰 문제냐는 듯이 물었고
친구는 교과서에 그런 사람의 글이 실렸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했음.
그리고 당연히 교과서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의 글이 실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난 그런 친구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눈만 꿈뻑댔고.
지금도 그 어린 아이를 분노하게 한 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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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라는 건 믿음을 파하는 일이라
배신을 당하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와 다른 편에 선 사람에게 칼을 맞는 건 그냥 당한 거고 
나와 같은 편에 선 사람에게 칼을 맞는 것이 배신. 

그 같은 편이라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같은 편이라고 해도 꼭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 혼자 배신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정치인 같은 경우.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운명을 맡겠다 나선 이들이니까
그 중에 몇명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고 지금도 몇 명이 있긴 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얘기들이 진실이라 생각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내니
다른 상황에서도 나와 비슷한 판단과 결정을 할 것 같은 믿음으로
나의 소중한 한표를 내어주거나 심정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게 항상 그렇게 똑 떨어지게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라 
가끔 내가 내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을 내 입으로 욕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처음부터 내편이라 믿지 않았던 정치인에게서는 그냥 왜 저러나 싶은 마음에 씁쓸한 썩소를 날리게 되지만..
내편이라 믿었던 이에게는 그보다 더 큰 미움이 생긴다.

그래서 완전한 내편은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련시켜도 
사회생활을 하거나 투표를 하거나 드라마의 결말이라던가..(?)
여러가지 상황에서
꼭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그러다가 배신도 당하고  
다신 무언가를 전적으로 믿지 않겠다 
배신 당했다는 비참한 기분이 들기 전에 
내가 먼저 쿨하게 여겨주겠다 다짐을 해도..
어느 순간에 밀려오는 배신감에 가슴이 나달나달해지고 
그렇게 우린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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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처리도 정말 훌륭하고 
평소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예의 바르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정말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뒷담화와 욕설로 정리되는 대화를 이끌어 갈 때나..
아니면 개가 되어 여자 동료들을 더듬고 다닐 때나..

뭐 그외에도 여러가지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의 생각과 믿음에 벗어나는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에서도..
난 나홀로 소심하게 속으로
"이건 배신이야!"를 외치곤 한다.

요즘에 트위터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여러가지 말이 쉴새 없이 흐르는 타임라인에서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 줄 알고 팔로우 했는데,
전혀 나와 다른 생각을 줄줄 늘어 놓는 걸 본다던가..
이런 사람은 이러할 것이다 싶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성향의 트윗을 던져 놓는 걸 보면서 
언팔도 하고 무시하고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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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혼자 느끼는 배신감은 내 탓이 90%이상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냥 몰래 보고 있다가 그리 느끼고
서둘러 판단하는 내 버릇때문에 그런 나홀로 배신을 자주 경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 사는게 나의 믿음대로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그런 소소한 배신감들에
교과서를 찢어내던 친구마냥 분노하고 열을 토해내는 날 발견할 때면..
아직도 이 나이에... 내가 세상에 적응을 잘 못하고 덜 컸나 싶기도 하고... 
Posted by White_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