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에 해당되는 글 26건
- 2011.12.23 뿌리 깊은 나무
- 2011.09.30 그래도 살아간다.
- 2011.07.02 로맨스타운
- 2011.07.02 한국 근대사 산책
- 2011.06.12 디어 평양 + 굿바이 평양
- 2011.01.04 유성
- 2010.12.22 아저씨
- 2010.12.12 이적 2010 투어 그대랑- 안양공연
- 2010.12.09 나는 행복합니다. -- 당신도 행복 하십니까?
- 2010.11.17 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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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폭풍 같은 드라마가 끝이 났다.
매회 사람을 홀리는 이야기와 연기와 대사들이 쏟아졌다.
말 그대로 사람 혼을 쏙 빼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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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도 사극의 재미이다.
이 드라마는 지금을 몇년 전을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게 한다.
그 시대에도 지금도 그러한 일들을 보편적인 맥으로 엮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야사와 작가의 창작은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하는 생각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드라마가 방송되는 순간.
똑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어쩌면 서로 비슷한 생각을 전파를 통해 나누고 있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떤 게시판에서 세종과 한글을 가카와 한미 에프티에이로 해석하는 글도 읽었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일 뿐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다.
작가가 이건 이렇습니다 하고 명확하게 밝힌 것도 없으니
다 가지 맘대로 생각하면 그 뿐..
정답은 없다.
어떤 드라마를 보든 어떤 이야기를 읽든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범위 안에서 그것들을 해석한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지 않았고,
작가 역시 동시대 사람이니
우리가 경험한 어떤 정치적인 상황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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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회에서 나온 이도와 정기준의 대화..
정기준
당신의 글자는 위정자와 지배층에 그렇게 이용될 지도 모른다.
무릇 백성은 어리석어 보이나 지혜로서 속일 수 없다 했어.
그러나 그 말은 오히려 어리석기 때문에 속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혜가 없는 선인은 바위를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헌데 너의 글자로 지혜를 갖게 된 백성은 속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속게 될 것이고 이용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새끼처럼..
이도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그들은 결국 그들의 지혜로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매번 싸우고 또 싸워나갈 것이다.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떤 때는 속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기도 하겠지.
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역사니까.
또 지더라도 괜찮다.
수많은 왕족들과 지배층이 명멸했으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수만년동안 살아 왔으니까.
또 싸우면 되니까.
벼슬도 없이 그저 밀본의 일을 함께하던 한가가
훗날 수양대군 밑에서 위세를 떨치던 한명회였음이 밝혀지고
그가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한명회의 시작을 위해 가던 중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서로가 누군지 모르지만..
우린 그들이 나중에 서로 반대편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난 궁에서 왕은 역사를 얘기한다.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어 얘기할 수도 없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만이 역사의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계속 싸우고 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싸움이지만 어느 한 쪽이 계속해서 이기는 싸움 또한 없다.
그냥 오늘 본 뉴스들을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 끝을 마무리 할 법한 문장이 제목이 되었다.
이 드라마는 이 문장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를 한다.
한 아이가 죽었고 그 일로 인해 한 가족은 가해자의 가족이 다른 한 가족은 피해자의 가족이 되었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든 큰 상처가 되고 후회를 남기는 법이지만 이 두 가족은 갑작스런 사건때문에 다른 가족보다 더 깊은 후유증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그 사건자체에 있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그것을 부추기는 언론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삶이고 생활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한낱 가십거리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엄청난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월드컵이나 월드 챔피언쉽 야구처럼 모두가 웃고 즐기는 일에 함께 웃고 즐길 수가 없고 누구나 쉽게 가는 가라오케도 쉽사리 갈 수가 없다.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해자의 여동생이 그런 삶을 끝내기 위해 피해자가족을 만나러 갔지만 어떻게 일이 꼬이면서 피해자의 오빠와 그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과 사람으로 처음 만나게 된다. 자신이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동생이 죽었다 자책하며 세상과 등지고 살아온 피해자의 오빠는 처음 본 그녀에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녀는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흥미를 가지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지금의 자신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 사건이었다.
피해가와 가해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아 왔는지를 알게 되면서 서로 끝과 끝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서로가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을 잔잔하고 끈질기게 그리고 천천히 보여줬다.
서로가 만나 이야기 하고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면서 점점 보통 사람들과 닮은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의 상실은 큰 상처로 남아 완전히 잊고 새출발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묵혔던 감정을 내보이고 서로 다독일 수는 있었다. 그렇게 사건 당시에서 멈췄던 시간을 다시 돌리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를 구해 유괴범으로 몰리면서 까지 아이를 보호하려고 했던 여자의 이야기를 하며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였다. 이 역시 사회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법한 충격적인 사건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그 속에는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 이야기 속에 사람이 있었다. 대사로 뱉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품고있는 솔직한 감정까지 지문에 담아 꼼꼼하게 사건이 아닌 사람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 꼼꼼하고 애절한 대본을 연기한 연기자들도 모두 훌륭했다.
오바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배우 에이타는 여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이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극의 분위기를 이끌던 미츠시바 히카리는 근래 본 어떤 일본의 또래 여배우보다 훌륭했다.
유년의 상처로 인해 살인자가 된 어둠을 정말이지 소름끼치게 표현한 카자마 슌스케는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가 쟈니스라는데 한 번 더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제일 놀란 배우는 오오타케 시노부였다. 체구도 목소리도 자그마한데 긴 독백을 하면서도 자신의 어린 딸을 죽인 살인자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오오타케 시노부의 연기였다. 강약과 대사와 대사 사이의 공백을 조율하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 차분한 화면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려 눈을 뗄 수 없이 그녀의 연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 대지진이 생각났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은 상태에서 그래도 살아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는 바로 다음 분기에 시작되었다.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된 이야기였을테지만 일본의 그 묘한 사회분위기와 이 드라마는 함께 읽혔다. 살아 남은 자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남은 삶. 드라마를 보고나면 언제나 등장인물이 엔딩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해 지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게 더욱 심했다. 한동안은 드라마를 생각하며 멍해 있을 정도. 앞에서 얘기 했듯이 대본도 연기도 그걸 버무린 연출까지 모두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랑이야기 처럼 또 스릴러처럼 모든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고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론이 아니어서 그 증상이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엔딩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사건 이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듯이. 그냥 그들의 인생의 한 부분을 엿보는 것 뿐이었을 테니.
+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에이타와 마츠시마 히카리가 묘하게 또 인연이 연결되는게..
마츠시마 히카리가 이 드라마와 동시에 출연중인 NHK의 일일드라마에서 에이타의 동생인 나가야마 켄타랑 상대역으로 나온다.
에이타가 이이토모 텔레폰 쇼킹에서 릴레이로 히카리에게 연결해 주는 부분에서 ㅎㅎ
지금 동생이랑 같이 있는데 동생이랑 통화하겠냐고 장난치더라. ㅎㅎ
마츠시마 히카리가 그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형제와 잘 어울리는 비주얼인가.... 싶었던 그냥 그런 얘기.
++
재작년에 사랑해 -용서- 라는 제목으로
이 드라마와 비슷한 사건을 다룬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스페셜 단편이 얼마 전에 방송되었다.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이 드라마와 비교해서 보는 맛이 있었음.
그리고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 인터넷 언론이나 일본의 황색찌라시나 수준이 그게 그거라는 생각도 들고..
뭐 이렇게 남걱정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지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돈.
처음에 식모들이라는 이름으로 한줄짜리 시놉시스가 돌아다닐 때는
그저 파리의 연인이나 기타 등등의 로코물의 재현이나
아침드라마 풍의 캔디스토리 라고 생각했었고
로맨스 타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모든 걸 다 뛰어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돈을 이야기하고
돈으로 나눠지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신분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 한다.
다른 드라마에서 그런 신분의 차이에 대해 애둘러 표현하는 것과 다르다.
"내가 사실 당신보다 돈이 많거든요." 하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에 따라서 여자주인공은 이 드라마에서 대놓고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식모임에도 당당하다.
그래서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남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궁금한 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애정의 행방이 아니라
지독하게 냄새가 나고 더러운..
캐리어에서 택배상지로 또 쓰레기 봉투로 옮겨가는 돈의 행방이다.
그 돈이 누구에게 가고 누가 당첨 복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돈의 흐름을 따라 갈등이 생기고 풀린다.
그리고 그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들.
돈이 많든 적든 어떤 직업을 지녔든 모두 돈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비슷하다.
백억이 이십오억이 되었고
그 뭉치돈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가고..
일번가 사람들의 재산상태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몇회 남지 않은 이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지 흥미 진진하다.
천주교 박해에서 8.15해방까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다양한 역사를 다룬 책.
어떻게 보면 산만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을 맞춰 볼 수 있는 여러가지 퍼즐을 다 풀어 놓은 것 같아서
나름 그 시대의 사람인양 시대상을 상상하면서 재밌게 잘 읽었음.
이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닌데
어느 구절에는 한 없이 슬프고
어느 부분에서는 호기심에 눈이 총총해 지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과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하는 10권에서는 몇부분 쉬이 읽혀 내려지지 않는다.
역사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읽어야 한다지만..
도저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게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민족을 강요하는 역사에 세뇌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들이 단순히 책 속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오신 시간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아직도 그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고 왜곡되거나 제 멋대로 해석되어서
정치적으로 혹은 개인이나 어느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있으니..
읽는 동안 감정을 빼고 읽을 수가 없다.
유난히 감정 이입을 잘 하는 내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들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들도 아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수업을 통해서 한동안 관심을 가졌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 안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그동안 여러가지 달라진 내 시각으로 다시 읽으니
새로운 이야기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이 책에서는 역사의 연속성과 해석의 다양함을 놓치지 않아서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과거가 쌓인 모습이 현재라면
과연 어떤 시간이 쌓여 지금이 되었나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드는 책.
이제 한숨 돌리고 더 골치 아파지고 한숨 나올 것 같은 현대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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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하면 제일 처음 드는 마음은 호기심이다.
그게 정말 유치하고 치졸하고 약은 마음 끝에 나오는 것이라
그냥 단순하게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랑 뭐가 다르고 뭐가 같은가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 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언론에서는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자신들의 논조를 강조하고 덧대는데 사용한다.
그러기에 나의 이런 호기심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내 가치관 안에서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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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은 엽서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고민들을 다시 하게 된다.
책에서 충분히 시선은 왜곡될 수 있고 때로는 편협된 이미지로 고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러하지 않지만 보여주고 싶은 한 부분을 강조해서 보여준다면
강조한 그 부분이 전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 일본인들이
조선의 이미지를 자신들이 교화하고 발전시켜야하는 미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그 이미지들을 일본 본국에 알리고 서양의 다른 나라들에 보여주기 위해 선전용 관광엽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꾸며진 모습으로.
사실 우리들이 사는 모습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비춰질 것이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더 명확해 진다.
과연 나는 누구의 의도에 따라서 왜곡된 시선이 아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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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평양에서 찍었다는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본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겉으로 잘 포장된 이미지라는 걸 강조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순수한 모습을 담으려 애쓰던
자신이 보고 싶은 평양의 모습을 담아 돌아온 서양의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던 다큐멘터리들 말이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 강점기와 개화기의 이 땅에서
지게진 농군의 모습과 곱게 화장한 기생의 모습 등 정형화된 이미지를 계속해서 찍어대던 외국인들의 시선과도 닮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습 안에서의 평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보여주는 것 이면의 것은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또 그들이 알고 싶다고 해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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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서는 나와 또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담아온 그 외국인 감독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평양에 접근한다.
감독 역시 외부인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평양은 아주 중요한 도시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간부이고
그녀의 세 오빠들은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그녀 또한 민족교육이라 불리는 사상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재일 한국인이라 차별받는 일본보다는 낫겠지 하며 보냈던 북한에서 오빠들의 생활은 힘들어 보였다.
생필품의 질은 떨어지고 양도 부족하며 아파도 치료받기 힘든 모습을 감독은 지켜본다.
하지만 정작 오빠들은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내색도 하지 않으며
부모님들이 일본에서 보내준 생필품등을 받아서 생활하고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 힘들어하면서도
조국을 찬양하며 죽어서 그 곳에 묻히겠다고 한다.
조카와 오프더 레코드(?)로 오간 대화를 자막으로 옮긴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뉴욕에서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조카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에 놀라워하며 그런 얘기를 좀 더 해줬으면 한다는 말도 한다.
그 곳에서 나고 일본에서 보내준 생필품으로 자라난 조카와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 가며
그녀가 볼 수 없고 갈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하는
자신의 존재가 그 조카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으로 그 자막을 마무리 했다.
자신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은 자신의 이념과 살아갈 길에 대해 스스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 갈등도 겪어 가며 자랐지만
북한으로 간 형제들은 다른 차원의 고통과 고민에 힘들어한다.
사상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러니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자신과 자신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 했고
장난스럽지만 조금은 무거운 대화를 통해
아버지와 화해할 수 없는 이념의 문제와
그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평양은 그녀에게 천국이고 지상낙원이라는 선전문구보다
사랑하는 형제와 조카들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여러가지 문제를 떠나서..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 개인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세계 정세까지 끼어 있는 복잡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 이야기는 그녀의 존재와 가족 등에 대한 질문이고 스스로 찾은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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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봉한 디어 평양이 북한에서 문제가 되어 다시는 북한 입국을 할 수 없고 그 조카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일담 격인 굿바이 평양을 보면
그녀의 큰 오빠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숨을 거뒀고
아버지 역시 뇌졸중으로 쓰러져 명을 달리 했다.
그 와중에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얼리다가 풀리기도 하면서..
평양은 그 전보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일상 용품을 짐으로 부치고
그녀의 다른 가족들은 평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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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담담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보며 나도 조금은 미안해 진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갑자기 미안해진다.
이건 감독이 조카들을 보는 시선과 닮아 있다.
난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복잡하고 내가 알 수 없는 감정도 흐르고 있겠다는 생각을..
두 편을 보면서 한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같은 말을 쓰면서 같은 역사를 공유한 이들이 이렇듯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
뭐 이렇게 복잡하고 기구한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다른 거다.
그들이 사는 세상과 시크릿 가든 사이의 현빈이 궁금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의 지우 선배는 시골 출신이긴 하나 방송국 드라마 피디였고,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사장은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재벌 백화점 사장이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캐릭터 사이에 있는 캐릭터도 그 어느 중간쯤 되리라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 현빈은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해 과대망상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여자 주인공도 아버지의 병과 실연으로 불면증에 괴로워하는 간호사다.
정신병원과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설정에서
행복이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정도의 영화를 생각했는데,
영화가 무겁고 어둡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간호사가 더 힘들어 보인다.
초점없는 눈에 바짝 말라 피딱지가 앉은 입술.
환자라고 들어온 남자 주인공은 웃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흰 종이에 수표를 써서 돈이라도 준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남자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모든 병에 원인이 있듯이 그가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 없이 병든 어머니와
도박 빚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형의 스트레스를 고대로 받아 쌓아두고 있었다.
사는 게 어둡다. 그러니 여자도 떠난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돈 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멀리 스위스로 보내버리고 자신이 돈을 만들어 낸다.
자신이 돈을 만들어 내는 병원 안에서의 그는 행복해 보인다.
항상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를 보는 간호사에게 그들은 그저 그냥 환자다.
그리고 그가 돌봐야할 환자가 하나 더 있다. 몇 년 째 누워 있는 아버지.
덕분에 빚이 늘었다. 남자 친구도 시들어 버린 자신을 떠났다.
남자는 현실에 적응을 해야했고,
여자는 현실의 짐을 조금은 덜어내야 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조금은 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남자는 부정했던 현실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다.
결국 치료라는 명목하에 망상을 지우고 현실을 받아 들인 남자.
현실의 갈등이 해결되고 탈출한 여자가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과 반대로 남자는 우울해졌고,
여자는 표정이 풀어졌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난 행복한가? 그리고 행복은 뭐지?
심히 집중력이 떨어진 요즘의 내가 보기엔 영화가 좀 산만하다.
감독이 의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입원에 있는 현재와 힘들어하는 과거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도 맥락 없이 나열된다.
설명도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다.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덕분에 마지막 장면까지 안타깝다.
현빈때문에 영화를 보게 되었으니 현빈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면..
참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
처음 시트콤으로 연기를 시작할 때나..돌려차기에 나왔을 때는 그냥 얼굴만 반반한 청춘스타였으나..
점점 연기자의 구색을 갖춘 출연작들을 쌓아 간다.
재벌 2세 사장 역도.. 가난한 복서역도 했다.
노희경 작가 작품도 했고 인정옥 작가 작품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한 곳에 치우치게 잡아 가지 않는다.
소위 잘생긴 배우들이 일부러 곱상한 외모에 반하는 거친 역을 거쳐
미남배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달리..
현빈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할 줄 안다.
또 그게 현빈이 잘하는 연기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지우선배와 김주원 사장 사이에 있는 이 영화의 캐릭터가..
조금 벗어나 있는 것 같아도..
지금까지 쌓아온 나이테를 메꾸는 현빈의 연기라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