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3. 17:39

2003년 4월 1일 

한가롭게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던 밤 어떤 게시판에 장국영이 죽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참 만우절 농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게시판이라 다들 반쯤 

어떤 고약한 취미를 가진 사람의 장난이려니 싶었다.

아직 한국 인터넷 기사로도 정확한 이야기가 없다 

믿기지 않는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짧은 중국어 실력을 동원해 중어권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그가 뛰어내렸다는 호텔의 사진이 그의 이름과 함께 뜬다.


다음 날 학교 강의실에서도 모두 수근거리며 그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다들 그에 대한 추억은 하나쯤 가지고 있는 듯.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의 이름과 함께 붙은 죽음과 자살이라는 단어에 받은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듯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한동안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 새 영화를 내놓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집착적으로 하루에 한 번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 

울고 있는 사람들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그의 동료들을 보며 그의 죽음을 확인한다.



2004년 4월 1일 

난 중국에 있었다. 

도시 전체에 재가 얹혀진 듯한 그 동네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죽을정도의 향수병도 겪었고 즐거웠고 자유로웠지만 외롭고 우울했던 시기였다.

조용한 외국인 기숙사 방 안이 싫어 반도 못 알아 먹는 중국어 방송을 틀어 놓던 아침.

그의 1주기를 추모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었지만 ... 그를 그리며 호텔 앞에 꽃을 놓고 울고 노래하는 팬들의 모습과 

생전에 그가 연기했던 장면들 노래하는 장면을 편집해서 보여준다.

수업을 다녀와서도 종일 티비를 틀어놓고 연예뉴스며 뭐며 

일 년 전을 이야기하는 채널을 찾아 종일 티비를 본다.

멍하니 티비를 본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단다.

그동안 4월이면 그의 영화를 한 편씩 본다. 생각나면 종종 그의 영화를 찾아 봤지만 4월에 보는 그의 영화는 느낌이 다르다. 

주로 보는 영화는 아비정전과 패왕별희 ..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이 진지해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몸짓 하나 숨쉬는 모습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그렇게 어디선가 살아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매년 4월 청승맞게 그를 추억했다.


그리고 올해 4월 1일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오늘 이 책을 읽었다.

책이 도착하고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손길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하얀 표지를 보는 순간. 덜컹하고 긴장된다. 뭔 오바인가 싶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한장한장 넘겨 봤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역시 심하게 앓는 기간에 이 책을 읽는 건 너무 위험했나 싶기도.


책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기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를 너무 사랑했던 어느 팬의 수기를 읽는 듯 했다.

꼼꼼한 자료와 애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겼다. 

영화 하나 하나 그의 손길이 닿았던 홍콩의 곳곳에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계속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가 진정 아름다웠던 배우였지만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놓치지 않는다.

거칠게 그의 사생활을 파고 들어 난도질하고 자기 멋대로 재구성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것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아름다웠던 시절 그리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그의 장면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게 했다.

그와 함께 보낸 작가의 추억을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나도 그 시절의 내가 본 장국영에 대해 추억하고 떠올린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하나하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난 다시 그를 되살리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정말 아름다웠고 멋있고 어떤 누구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아우라를 지녔던 사람.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지니고 떠난 사람.

언제고 4월이 되면 떠오를 그 사람. 


그리고 언제고 떠올려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가슴이 벅차다. 

책 읽는 내내 코끝이 찡하고 어떤 연애 소설보다 사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 그는 갔지만 그의 영화 속에서 아직도 그 눈부신 모습을 보여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4월이면 영화와 함께 이 책으로 그를 추억해도 되겠다. 


이런 책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White_Luna